준수한 필력의 동양 로맨스 소설.
점수 : ⭐⭐⭐⭐✶
1. 소개글
하루하루 한의사로서 치열한 나날을 보내던 김소진.
그러나 예상치 못한 화재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 그녀는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이 고구려 시대, 절노부 연씨 가문의 '우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한 가문의 딸로 태어나 이 생에는 편한 줄 알았는데 하필이면 그녀가 떨어진 고구려는 전쟁이 판치는 시대!
게다가 이제 갓 열두 살이 된 그녀에게 정략혼이라는 예기치 못한 시련이 찾아오고-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 담덕에 네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이냐?"
"담덕이라면....."
하필이면, 결혼 상대자로 지목된 사람의 이름이 광개토 대왕의 이름이다.
역사를 잘 공부하지 않은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이름!
아니, 그것보다 혼인이라니! 열두 살의 나이에 혼인이라니!
"전....전 태자님이랑 혼인 안 할 겁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태왕, 그리고 '미래'를 기억하는 여자, 우희가 꽃피우는 연애담.
2. 스토리
한의사로서 살다가 죽어 고구려 귀족 딸로 태어난 우희. 아버지를 따라간 궁의 한편에서 아버지가 아프다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우희는 안쓰러워 기꺼이 약 처방을 알려주고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나면서 서서히 친해지게 된다.
그러나 만났던 아이가 그 유명한 광개토 대왕. 담덕인 걸 알고 멀어지려 하지만 친구가 필요하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이내 두 사람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친한 사이가 되고, 계속된 전쟁에 우희의 가족 또한 전쟁터로 향한다.
결국 우희는 가족들 생각에 전쟁터로 향하고자 하고, 그런 우희를 따라 담덕 또한 병사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향한다. 그런 두 사람의 앞에 사건 사고가 닥쳐오기 시작하는데...
3. 감상평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시대물 소설이었다. 계속되는 전쟁과 혼란의 시대. 누구나 집집마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고, 변방은 백제와 치열하게 싸워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야 한다. 우희 또한 전쟁터를 겪으며 잔인한 현실을 목도한다.
여기서 죽일 수 밖에 없는 담덕과, 살려야만 하는 우희의 가치관이 충돌한다. 조금 삐딱하게 보자면 적군도 살려야 한다는 의원의 마음가짐이 답답하게 보일 수 있지만 필력 때문에 대충 넘기면서 읽었다.
담덕이라는 유명한 역사적 인물을 로맨스적으로 매력 있게 그려냈다. 강하면서도 넓은 왕으로서의 마음가짐을 가진 남자가 한없이 우희에게 퍼주는 모습이 매력 있었다. 여주인공답게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는데 그 걸림돌을 하나하나 제거해 직진해가는 모습이 자연스레 묘사됨으로써 남주의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친구라는 생각, 어린 나이에 만나 동생으로 보는 눈. 역사적으로 유명한 광개토 대왕이라는 사실까지. 이런 걸림돌들을 담덕은 거침없이 직진함으로써 끝내 우희가 담덕을 사랑하게 만든다.
죽마고우 친구에서 서서히 연인으로 변해가는 두 사람의 사이가 로맨스적인 분위기를 잘 그려냈다. 거기에 두 사람의 티키타카가 그 분위기에 더욱 감칠맛을 살려준다.
고구려 시대의 분위기와 옛스러운 분위기가 작품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래서 담덕이라는 캐릭터에 맞는 배경을 잘 표현할 수 있었다. 필력이 좋아 중간중간 지루하지 않아 매우 재밌었다.
4. 작품 내 명장면
나는 담덕이 좋았다. 이성으로서의 애정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담덕이 좋았다. 그래서 담덕을 돕고 싶었다. 최대한 그가 편안하게 왕위를 지킬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그럴 생각이었다.
혼인이야 뭐가 어렵겠어? 어차피 좋아하는 사람도 딱히 없고, 열렬하게 사랑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이 한 몸 우리 광개토 대왕님과 고구려의 미래를 위해 바치지 뭐.
거기까지 결론을 내리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나로서는 굉장한 결심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담덕은 나의 노력이 가상하지도 않은지 시종일관 굳은 얼굴이었다. 차갑다 못해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얼굴에 괜히 민망해졌다.
“야…… 아무리 나랑 혼인하는 게 싫다고 해도 그렇지, 그런 반응일 것까지는 없잖아? 말한 사람 민망하게.”
나의 투덜거림에도 담덕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연우희 너.”
담덕이 짓씹어 내듯 내 이름을 불렀다.
“혼인이 뭔지는 알아?”
“알아. 그러니까 하자고 한 거야.”
“난 지금 혼인한 남녀가 어찌 지내는지 아냐고 묻는 거야. 난 왕이 될 거고, 왕에게는 후사가 필요해. 그러려면 뭘 해야 하는지 알아?”
“그…….”
노골적인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내 얼굴이 달아오르는 꼴을 지켜보던 담덕이 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하. 그 얼굴을 보면 모르는 것도 아닌데.”
담덕이 손에 들고 있던 활을 던지듯 바닥에 내려놓으며 내 앞에 다가왔다.
“너, 날 아주 우습게 보는구나.”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려니 담덕이 내 어깨를 붙잡아 걸음을 막았다.
....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이상한 전율이 몸을 타고 흘렀다. 담덕은 똑바로 내 두 눈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내 입술을 깨문 뒤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나는 멍하니 눈을 뜬 채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감당할 수 있겠어?”
담덕이 내 등을 받치던 손을 놓으며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쓸었다. 번들거리던 타액이 한순간에 닦여 나가는 모습을 보자 그제야 나는 담덕과 내가 무엇을 했는지 깨달았다.
“이, 이, 이, 입을 맞췄어? 나한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담덕이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혼인하면 이런 걸 수도 없이 해야 하는데. 아니, 이보다 더한 것도 수없이 해야 할 텐데.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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