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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리뷰/판타지, 현판, 퓨전

[판타지 리뷰] 사나운 새벽 (이수영)

by ahslxj15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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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 ⭐⭐⭐⭐✶

1. 소개글

늙고 소심한 흑마도사에서 제국의 오만한 소드마스터 황태자로, 또다시 이름 없는 용병으로 드래곤과 마족들이 탐내는 힘을 가지고, 그 힘 때문에 계속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세계를 방황했던 사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왕과의 계약을 통해 마왕과 심장을 나눠가진 흑마법사 록 베더. 긴 생애 종지부를 찍기를 바라는 그에게 골드드래곤 오르게이드는 길고 긴 꿈을 안겨준다.

록그레이드 펠러스. 현제 26세. 펜게이드 제국의 황태자로 황후의 단 하나뿐인 적자로 깨어난 것이다. 록 베더의 기억 없이 살아가는 황태자로서의 새로운 인생. 무능력한 난봉꾼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로 변신하면서부터 새로운 제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2. 줄거리

마왕과의 계약으로 마왕의 반쪽의 심장을 가지게 된 록 베더. 마왕과 수명을 공유하고 죽지 못하는 몸 상태가 되어버렸다. 때문에 마왕의 마력과 외모를 닮아 용병의 생활을 하게 된 흑마법사였지만, 계약으로 기억을 잃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바로 소드마스터이자 황태자의 몸으로. 황태자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따금 나타나는 기시감에 록 베더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기억을 잃기 전 황태자는 소드마스터들을 불러 모아 누가 최강인지 가려보자고 서신을 보낸 상태이고, 새롭게 황태자가 된 록 베더는 졸지에 소드마스터들과 대결을 펼치게 된다.

 

 

3. 감상평

오래된 명작이지만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다. 매우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빙의에 따른 몸 상태와, 시간대가 과거와 미래르 넘나들면서 현재에 있었던 일이 과거에 나를 위해 준비된 일이고, 미래의 일이 과거의 나를 위해 준비하는 일이다. 이런 시간 이동의 묘미를 주인공이 점차 깨달으면서 느껴지는 재미가 크다.

후반부에 반전으로 밝혀지는 이 시간 이동은 전율감과 함께 독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필력으로 주인공의 상황을 맛깔나게 묘사한다. 새롭게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미스터리함과 그걸 밝혀내는 과정에서 느끼는 사건 전개의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거의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이고, 십 몇년전에 읽어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밌고 여운이 큰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번이나 재탕할 정도다.

 

 

4. 주인공

시간 이동과 몸 주인의 상태에 따라 이름과 외모가 달라진다. 흑마법사일 때는 마왕의 외모를 닮아 수려한 외모를 자랑했다면, 황태자는 당당한 사내의 외양을, 용병은 그보다 한결 더 거친 느낌을 표현한다.

 

작가가 직접적으로 묘사하지는 않고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나, 주인공의 행동으로 간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한결 더 매력을 끌어올렸다.

 

 

5. 작품 내 장면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흑마법사는 계약한 마족이 없이는 아무런 마법을 쓸 수 없다. 흑마법사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많지 않은 이유도 그것이고 쉽게 파멸해버리는 것도 그 이유다.

수많은 마족들이 자신의 마력을 무제한으로 빌려주진 않기 때문이고 인간이 마족의 마력을 빌린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연약한 몸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흑마법사 대부분이 리치가 되지 않는 이상 쉽게 요절한다. 물론, 마왕과 계약한 흑마법사는 또 다르지만 말이다.

"오르게이드는 여전한가?"

<겨우 20여년 밖에 안 흘렀는데 여전한 게 당연하지. 너도 쓸데없이 전쟁터를 헤매고 다니지 마라. 나는 나의 계약자가 그런 곳에서 뒹구는 걸 좋아하지 않아.>

"마왕답지 않은 소릴 하는 군. 전쟁터가 싫다니."

<전쟁터가 싫은 게 아니라 내 힘을 갖고도 가장 밑바닥의 용병 생활을 한다는 게 마땅치 않아서 하는 이야기다. 최소한 내 힘을 가진 자라면 한 나라를 멸망시키는 정도의 일은 해야 할 거 아니냐?>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진짜 멸망시키고 싶은 나라는 이미 100여 년 전에 멸망했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진흙탕 속의 전쟁터를 맨 몸으로 뒹군다고?>

시스테이어스가 킬킬 웃음을 터뜨렸다. 조소가 명백한 그 웃음을 듣고도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그의 말은 너무나 옳아서 할 말이 없다.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은 무슨 말을 듣고도 화가 나지 않는다.

다만 피곤할 뿐이다.

"오르게이드에게 가겠다. 아마, 이틀 안에 갈 수 있을 거다."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계약상의 배려는 이것 정도다. 칼레이드.>

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차가운 검은 눈이 묘하게도 감정을 담고 날 바라보았다. 그가 손을 내밀어 내 뺨을 만졌다.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체온이 새삼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 난 따스한 인간의 체온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나는 내 이름을 잃어버렸다. 내 진짜의 이름을 잃어버렸다. 마왕이 부르는 나의 이름은, 칼레이드. 그것만이 유일한 존재의 이름이다.

그 외에 다른 것, 용병 시절에 불렸던 록 베더라는 이름은 드래곤 오르게이드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록 베더는 마계의 언어로 <파수꾼>을 뜻했다.

<드래곤도 우리도 긴 시간을 살아간다. 아무리 인간이라도 마음을 달리 먹으면 긴 시간을 살아갈 수 있을 거다. 유약한 마음은 이제 버리는 게 좋아.>

"........"

<내 계약자가 죽기만을 바라는 멍청한 녀석이라는 건 정말 슬픈 노릇이라고.>

그는 큭 하고 웃더니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스륵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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